데카르트의 삶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 라 플레슈 예수회 대학에서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데카르트는 학창 생활 중에도 교사를 포함해 이미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공언하는 진리에 비판적이었으며 자신이 배우는 지식에 의문을 품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는 천 년 동안 유럽을 지배한 세계관이 맹렬하게 도전을 받던 시기였기에, 데카르트는 교사들 및 다른 지도자들이 강압적이고 독단적으로 선언한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유럽의 최고 명문 학교에 다니며 결코 열등한 학생이 아니라고 자부했던 터라, 더욱더 자신의 의심이 정당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은 인간의 무지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데카르트는 법학을 전공한 푸아티 대학을 졸업한 후, 책에 없는 무언가를 배우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파리의 활기찬 삶을 즐기다가 나중에는 그 도시의 조용한 곳에서 사색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나소의 모리스 공의 군대에 입대하여 여기저기 전투에도 참여합니다. 그런 시기를 보낸 후 마침내 1628년 암스테르담에 정착합니다. 거기서 이십 년 넘게 진리의 본질, 신의 존재 그리고 우주의 물리적 구조에 관해 비판적이고 심오한 사색에 몰두합니다. 이때 데카르트는 최상의 저서들을 내놓았습니다. 명료한 사고들이 담긴 데카르트의 고전들은 명확성과 정밀함이 담겨있습니다. 이 저술 덕분에 데카르트는 유명해졌고 그의 철학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1649년 데카르트의 은둔 생활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가정교사로 초빙되면서 끝납니다. 여왕은 차가운 도서관에서 새벽 5시에 공부를 시작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자고 채근하였습니다. 이런 생활방식은 허약한 데카르트에게는 너무나 무리였습니다. 결국 데카르트는 그 해 겨울을 제대로 나지 못하고 1650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데카르트의 「기하학」
누구나 인정하듯이 데카르트는 근대 수학과 철학의 아버지이며, 갈릴레오와 뉴턴의 연구에 의해 결국 대체되기까지 17세기를 지배했던 새로운 우주론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믿을 수 없거나 무가치하다고 확신했기에 모든 견해, 편견, 독단, 선입견을 내팽개쳤습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지식을 얻는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데카르트는 견고한 철학 체계는 기하학자들의 방법을 통해서만 연역해 낼 수 있다고 결정합니다. 그는 "수학은 인류가 전해준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더욱 강력한 지식의 도구"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공리들을 바탕으로 세워진 수학의 패턴을 따라, 그는 자기 마음에 모든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고 부누명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진리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방법에 대한 탐구 그리고 이 방법을 실제 철학 문제에 적용하기에 관한 내용은 그의 유명한 책인 「방법서설」에 담겨 있습니다. 이 새로운 방법이 철학 이와의 분야에서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데카르트는 그 방법을 기하학에 적용하였고 그 결과 「방법서설」의 부록인 「기하학」에 담아 발표합니다. 이것은 그가 철학을 하는 방법에 대한 결과이고, 그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 책은 대수학을 통해 어떻게 기하학적 모양들과 도형들을 분석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저서는 한 좌표계에서 좌표를 표기하는 것과, 그런 좌표로 표현된 수학적 대상들을 대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다루는 해석 기하학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하학」은 또한 여러 가지 수학 문제들을 푸는 법을 보여 주고 실수를 사용해 평면의 점을 표시하는 법, 그리고 방정식을 사용해 곡선들을 나타내고 분류하는 법 등을 담고 있습니다.
기하에 대한 부록편은 세 권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1권에서는 우리가 해석기하라고 부르는 것의 기본적인 규칙과 파푸스가 쉽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 중 하나를 각색하여 근대적인 기호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 그래프를 그리시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수학을 능가하는 것이지만, 데카르트의 새로운 기하의 범위 내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하에 대한 부록편의 제2권에서 데크르트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방정식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만약 a가 0보다 같거나 크고, 이차방정식이 일차인 인수로 인수분해되지 않으며, 적어도 두 개의 점이 이 관계를 만족하면
방정식은
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데카르트는 미적분을 이용하지 않고 주어진 점을 통과하는 원추곡선의 접선을 찾는 방법을 설명한 것입니다.
기하에 대한 부록편의 제3권에서는 '부호 법칙'을 포함하는 대수 방정식에 대한 고찰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1631년 해리엇까지 올라갑니다.
데카르트의 「기하학」은 대수학을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역으로 기하학적 형태를 대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하나의 증명에서 사용되는 대수학적인 단계들이 보통 기하학적 표상에 대응한다고 믿었습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데카르트는 대수학과 기하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결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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